요한복음 3장 1절~10절 형이상학

요한복음 3장 1절~10절 예수와 니고데모 성경 말씀 형이상학적 진리 독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을 표면적으로만 보고 해석하려 한다면 배가 산으로 가기 때문에 그 이면을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제3장 예수와 니고데모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1)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느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2)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요한복음 3장 1절~2절 내용을 보시면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은 현실에 있는 눈에 보이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이것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서 그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직접 보고 나서야 신이라고 믿어주겠다는 얘기로 보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는 보이는 것에서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우리 의식, 즉 현실에 반응 당하고 성경의 표면적인 해석에 가두어져 있는 의식의 상태를 뜻합니다. 그리고 이를 상징하는 것으로 바리새인 그중에 니고데모라고 하는 특별히 선생 된 사람을 표현한 것입니다.

요즘으로 본다면 흔히 있는 기독교인, 목사, 집사, 장로, 권사님 등 성경을 표면적으로는 달달 달 외울 수도 있지만 그 이면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그런 것들로 볼 수 있습니다. 다음 3절 이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3)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대부분 사람들은 표면적인 의식을 갖고 성경을 보기 때문에 문자적으로만 이해를 하실 것입니다. 예수라는 한 사람이 어떤 육체적인 선생으로서 이렇게 현실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걸로 생각하는 성경 독자들을 위해서 성경 저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즉 내 의식 세포들 한 테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성적 걷 자아 에고한테도 말합니다. 또 현실에 즉각 반응 당하고 분석하는 오감에게 말합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다시 말해 너희들이 뱃속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육체의 고깃덩어리가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우리가 영으로 깨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영적 시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느껴내는 영적인 인식인 깨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즉 현실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상상력 영과 진리가 깨어나면 그 진리는 내 안에서 나에게 알려줄 것입니다. 내 의식이 진정한 창조의 권한임을 말입니다. 현실에 반응하지 않을 수 있는 상상력이 진짜 내 안에 있는 영의 실체임을 내가 자각하고 나 스스로가 하느님 그리스도임을 깨닫게 될 때가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4절도 이어서 보겠습니다.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또 거듭난다는 표현을 문자적으로 해석한 니고데모입니다. 현실에서 대부분의 사람들 모습입니다. 다시 모태에 늙은 나이로 들어갔다가 다시 밖으로 튀어나오는 걸로 이해하고는 눈앞에 육체로서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한테 물어보는 형식으로 적어놨습니다.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역시나 또 알아듣지를 못하니 진실로를 두 번씩 쓰면서 말합니다. 진짜 진짜 사람은 보이는 육체적 고깃덩이가 아니고 환경에 지배된 그 부속물도 아니다. 또한 사람이 네가 스스로 너라고 생각하는 그 인식이 네가 아니라 하느님의 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육체 덩어리로 한번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으면 더 이상 육체로 날 필요가 없으니 이제는 영으로 한 번 더 깨어나라는 말입니다.

스스로의 인식이 깨어나서 현실에 보이는 내가 육체의 내가 아님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거듭남을 통해 영으로 깨어나지 아니하면 영의 세계의 영원한 내 존재의 의식으로 깨어날 수 없으며 하느님의 나라 천국은 결코 내 의식 가운데 나로서 존재 지을 수 없습니다. 6절 이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성경 저자는 다시 한번 또 못 알아들을 것을 염려해 부연 설명을 합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비유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가 성전에서 동전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누구의 얼굴이고 누구의 글자냐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가이사의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현실에서 구체화시켜 실체라고 우리가 여길 수 있는 모든 결과물들은 결과물들의 이성적 자아에게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영으로 깨어난 상상의 대상물들은 내 안에 있는 인식 하느님의 권능에게 이렇게 영과 영 육과 육을 나눠 놓은 것입니다. 즉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영이 육을 창조하는 원인인데 영은 영이고 육인 육일뿐 섞이거나 중간은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현실에 반응한 대상물들은 이성과 오감으로 반응할 뿐이지 영으로까지 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인식은 영으로 깨어난 인식의 대상물을 상상으로 느껴내는 것에 있다 그 뜻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현실 육체적 고기로 스스로를 인식하면 안됩니다. 이러한 의식 상태로 죽으면 정말 영원한 현실 육체적 고기일 뿐입니다. 다음 7절~8절 보도록 하겠습니다.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우리가 아무리 이성적으로 깨어나 알려고 해도 영은 4차원의 세계이기 때문에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 자체가 깨어야 본체가 보이지 그전까지는 아무리 이성적으로 물음표를 달아도 이해가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이어서 보겠습니다.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너는 혈통으로는 육체적 족보가 아브라함이고 이스라엘의 백성 즉 선민이라고 일컫는 그러한 고깃덩어리라면 영으로 더 깨어있어야 될진대 반대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표면적인 문자해석에 휘둘리게 되면 오히려 영은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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